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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잭 화이트와 청각적 자극..그리고 위로 2014.08.17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정환경은 꽤 중요하다.

우리 아빠[각주:1]의 하루는 목욕탕에서 시작된다. 아침 7시쯤? 적당한 야구 모자를 뒤집어 쓰고 목욕탕으로 가서 과도한 손동작으로 머리를 감고 또 몸을 씻는다. 몸 뿐만이 아니라 생활공간에 있어서도 이 행위는 고스란히 적용된다. 청소나 정리에 대단한 스킬과 요령은 없지만 쓸고 또 닦는다. 고등학생 때 야자 끝나고 늦게 귀가한 아들 딸에게 거실 닦으라고 늘 걸레를 내미셨던 적이 한 두번이던가. 주말에는 늘 걸레와 함께 지내신다

암튼 뭐든 깨끗한 걸 좋아하셔서 걸레와 빗자루는 온전히 아빠의 몫이다.(그러고보니 엄마가 열심을 다해 걸레 빠는 모습이 기억에 없구나....) 늘 청결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빠의 습관 때문인지 아빠에게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다. 흔히 말하는 "남자 냄새"는 당신이 참지를 못하기에 우리 아빠와는 거리가 먼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남자 냄새"라는 것을 사춘기 남동생을 통해 처음 접했다.(나 여중 출신) 10대의 어느 날 남동생 방에 들어갔는데.. 정말 참지 못할 이상야릇한 냄새가 나서 얼굴이 잔뜩 찡그리며 엄마에게 이게 뭐냐고 막 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남동생 스스로도 놀랐던지 이후 동생은 체취에 꽤 신경 쓰는 남자가 됐다. 지금도 동생네 놀러 가면 방에 들어가자마자 "무슨 냄새 안나?"라고 물어보니까. 



지금도 남자 특유의 체취는 참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다. 유난 떤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와 엄마는 그러하다. (그러고보니 우리 엄마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꽤나 민감한지라 난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아빠에게 씻고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수많은 소설 속에서 연인들이 서로의 체취에 빠져 허우적 대는 장면이 묘사될 때마다, 혹은 영화 속에서 서로 씻지 않고 부둥켜 안는 장면이 나오면 나와 엄마는 기겁을 한다다른 건 몰라도 후각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두 모녀는 기괴하리만치 상상력을 동원하여"이건 좋지 않아"를 연발한다.



가정 환경 운운한 것은 이런 부모님 덕분에 시각, 청각...이상의 것은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협소한 그릇을 말하고 싶어서다. 특히 청각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하여, 첫 남자친구는 온전히 목소리로 선택했다. 뭐 원거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가장 중요했던 나에게 그는 청각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나름 괜찮은 남자친구였다.



이렇듯 후각, 촉각 보다는 청각에 치우쳐 이성의 존재를 느끼고 만족하는데 나름 익숙한 나는 요즘 잭 화이트 때문에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 이 남자의 최근 앨범"Lazaretto"는 정말이지... 

건조하기 그지없는 외국 생활에 촉촉한 빗줄기랄까. 어두운 터널 같은 외국 생활에 한 줄기 밫이랄까. 
암튼 이래저래 "줄기"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그의 기타 연주는 다양한 종류의 박력을 묘사하고 있어서 듣는 이의 (여자)마음을 격하게 흔들어댄다. 지난 솔로 앨범과 비교했을 때 뮤지션이자 한 남자로서의 도량 또한 엿보이는데...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와 같은 악기와 기타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의 기타는 각종 악기의 음율을 대담히 품고 또 품어준다. 이 사운드를 듣고 있자니, 그를 둘러싼 여러 소문이 무색해질 정도랄까. 암튼 그 드넓은 음악적 이해와 포옹은 듣고 있는 여심을 또 다시 흔들어댄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금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서 나는 아직도 희미한 현기증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고보니 최근의 나는 청각적인 만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듯하다.
이는 매일같이 들려오는 외국어의 홍수에서 나를 지키고자 하는 일종의 "본능"이랄까.
익숙하다 싶으면서도 순간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외국어(일본어), 그것이 비록 순간이라 할지라도 겨우겨우 쌓아놓은 "적응"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물론 다시 쌓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질감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경험은 의외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적응"이라는 줄타기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의 계속되는 숙제이자 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어로의 대화는 단어만 외운다고 해서 성립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기에, 단어의 1차적 뜻을 넘어서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고 받는 문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공회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내가 때로는 한심하기도 해서 외국으로 오겠다고 한 나의 선택을 증오할 때도 있다.




그럼 우리 노래를 들으면 되지 않냐고?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 잔인하다. 우리말의 울림과,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멜로디를 타고 귀로 들어오면,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라는 회의와 함께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때문에 되도록이면 한국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에도 넬의 새앨범을 듣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듣지 말아야지, 들으면 안돼!라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누군가는 한국 노래를 듣는 것이 큰 위로로 작용할 수도 있을테니)나에게 이 방법은 은근하게 "잔인"으로 다가오기에 한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것을 나름의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튼튼한 남성성[각주:2]과 음성학적 위로라고나 할까.
이 모든 조건을 (내 입장에서 본다면) 완벽히 갖추고 있는 잭 화이트의 두장의 솔로앨범은 정말이지 "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9명의 일본인과 함께 유일한 외국인으로 참여한 술자리에서 나는 몇 번이고 줄에서 떨어졌다. 신속히 줄을 다시 타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줄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긴장감은 나를 즐거움에서 멀어지게 했다. 술자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은 잭 화이트는 늘 내 뒤에 서 있는 든든한 남친처럼, 일본어의 쉴새없는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처럼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게다가 후각적 자극 또한 전무하기에 청각을 향한 집중도도 높아지고...

오오...!! 이같은 위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잭 화이트 같은 인물이 태어나 그 재능을 꽃피웠기에 한없이 기쁜 밤이다.



  1. 아버지라 해야 하나. 이 호칭도 늘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 중 하나인데. 난 나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아빠"라는 호칭이 너무 유아적이지 않나 싶어 손님이 오시거나 할 땐 아버지라고, 물론 일상생활에서 나름의 정중함을 적극 어필하고 싶을 때도 사용하긴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면 손님들의 대부분이 놀란다. 아니 왜 "아빠"라고 안 부르냐고. 오호호호 아버지라니.. 오호호호! 아니 이게 웃긴 일이냐고. 이 나이쯤 되면 아빠와 아버지를 오고가도 되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아빠"를 강요하게 되었는가! 응??? [본문으로]
  2. 왜소한 남자가 많은 주변환경이다. 그래서 몇 달 전 한국인 유학생 모임에 갔을 때, 우리나라 남자들이 이리도 건실했나 깜짝 놀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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