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노력을 더하지 않으면 한국인과 한국어로 말하는 일이 없는 요즘이다.

(여기서의 노력이란, 카톡에 등록된 한국인 지인들에게 "어디야? 뭐해? 우리 좀 만날까?" 뭐 이런 연락을 하는 일을 뜻하는데.. 요즘은 이 작은 실천마저도 하기 싫다. 너무 더워..헥헥)

학교에서도, 뒷풀이 장소에서도, 기획회의에서도  외국인은 나 혼자인 상황.

이런 상황이 즐겁고 두근거렸던 것도 작년까지였고 최근들어 이런 상황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느 선까지 나의 생각을 밝히고 또 공유해야 하는지.

E군과, H양의 발언을 어떻게 정리하고 전달해야 하는지. 

나의 전달로 핵심적인 내용이 누락되지는 않을지.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를 최초로 기획한 아티스트의 의중을 끊임없이 파악하고 전달하고 정리하는 일.

이 모든 행위는 대화로 이루어지며, 아직도 나에게 대화는  큰 숙제이자 사건이다. 

적어도 외국인인 나에게는 말이다.


더위에 지쳤는지, 아니면 이러한 일상에 지쳤는지 지난 2주는 정말이지 딱 시체처럼 지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그렇지 않으며 추리 소설을 읽으며 철저히 "현실"에서 발을 뺐다.

그땐 이게 최선이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는 일 말곤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일시정지 모드라 해도, 세상은 돌아가기에, 침대에서 맥없이 누워 있다가 일어나 기획회의에 참여하고 설명회를 준비하고 또 뒷풀이에서 무너질 듯한 어깨를 두드리며 맥주를 마시고.

텅 빈 상태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은근 신기하기도 했다.


박사과정의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논문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것.

하지만 그마저도 손을 놓고 있었기에 지난주 개인면담시간에는 빈손으로 교수와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나의 손을 떠났고 그렇기에 내가 할 일은 없다 라는 착각은 은근히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손글씨로 대충 써내려간 종이 한 장일 내밀었으니까.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배고프다는 교수는 나를 데리고 근처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가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며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 가지는 장점을 이것저것 이야기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저 그런 외국인 유학생에게 기획을 둘러싼 자신의 고민과 그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스파클링 와인은 레드 와인이 되었고 콩요리와 버섯, 치즈, 피클이 담긴 안주 접시는 바닥을 보였다. 

우리 앞의 음료와 먹거리가 말끔히 사라질때까지 교수는 들어주고 이야기 해주었다.


좋은 대화는 큰 치유의 힘을 가진다.


교수와 함께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난 일종의 방패를 갖게 되었다.

이곳의 살벌한 더위까지는 막아주지 못하겠지만(남극으로 가지 않는 한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일 정도로 이곳은 덥다..), 적어도 어리석은 내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무기력은 차단하는 듯하다.


나를 잃지 않는 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것.

둘 다 결코 쉬운 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루고 싶은 것.


그래,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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